드라마 보면 직장 동료들끼리 눈 맞아서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바퀴벌레들... 그래서 젊은 개발자들 중에 일부는 사회생활 초창기 때 그런 기대도 많이 하더군요(이미 연애 중이면 패스). 복장이 그 시점에선 IT의 풍파를 겪지 않아서 나름 깔끔하다 보니 가능성이 제일 높을 시기 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경험 또는 사냥한(?) 사내연애 커플을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해 봤습니다. 의견 주신 모 카쉐어링 서비스 개발, 운영하시는 정XX 팀장님께 감사 드립니다(이젠 일도 하셔야 할텐데...).
왜 개발자들에게서 사내연애가 생길까?
저는 좀 슬픈 상황을 많이 봤어요. 제 주변 사내연애는 대부분 어려운 프로젝트에서 생겨나더군요. 개발자들이 집엘 못가고 야근,철야에 주말출근, 아니 야근만 하더라도 주말에 피곤해서 뭘 못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외부인과의 접촉이 어렵죠. 무인도에 남녀 한쌍이 생존했거나 지구 종말에 남녀 한쌍이 생존한 거랑 같은 상황?
이때 옆에 있는 직장동료가 눈에 많이 띄게 되고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다 보니 이성으로 느끼게 되고 둘이 그지같은 프로젝트의 역경을 헤쳐나가다보니 눈이 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부분 나중에 사귄 이유 물어보면 외모보다는 다정다감함, 성실함이 대부분 입니다. 어떻게 보면 외부 소개팅에선 애프터도 신청안할것 같은데 오래 겪으면서 동화가 된다고나 적응한다고나 할까... 저정도면 괜찮지 않아? 라고 스스로 뇌이징을 하면서 연애를 시작 합니다. 정상적일때 맺어지는건 거의 못봤습니다.
예전에 어떤 공개 커플들에게 시작점을 물어봤는데 둘다 철야한다고 사무실 한쪽편씩 잡아서 라면 박스 깔고 자고 있었는데 남자쪽에서 잠바 덮어주고 간것에 감명받아 연애하고 결혼했다는 얘기듣고 울뻔했습니다. ㅎㅎ
사내연애의 장점
이렇게 사내연애를 하기 시작하면 여러 장점들이 생깁니다. 들은 내용들을 좀 정리해봤습니다.
데이트 하기 편하다. 사무실이 곧 데이트 장소
데이트를 위해 여친/남친 회사로 이동하는 시간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같이 퇴근하면 되고 퇴근안하고 삼실에만 있어도 같이 있으니 좋아 죽습니다(그대로 죽어도...). 비밀연애 중이면 퇴근할때 약간의 시차를 고려해야 할 정도? 밤늦게 단둘이 야근을 하고 있어도 즐겁고(일이 될까요) 퇴근하다가 밥을 먹어도 차를 마셔도 그냥 데이터의 연장이 됩니다. 물론 이건 초창기때의 status 입니다. 이게 곧 오래 연애를 하면 단점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바람 피우는지 감시하기 쉽다
맨날 눈앞에 보이는데 바람이 피워지겠습니까. 서로 떨어져 있을때는 오늘 회식이야, 오늘 야근이야 등의 전화통화에 주말에나 겨우 만날수 있다보니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데 사내연애는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특히 진성 A형들한테는 이보다 마음이 편안한 환경은 없다고 합니다.
화재에 업무까지 포함되어 범위가 확대된다
대화 소재가 직장인들이 하루를 제일 많이 보내는 사무실의 얘기랑 엮이니 대화도 자연스럽지요(주로 누굴 씹는...). 부서가 다르면 서로의 부서 내용을 공유하면서 정보 교류량도 늘어 납니다.
드라마 주인공 같다
대부분의 사내연애 커플들이 회사에 얘기를 안하고 비밀 연애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짜릿하죠. 영화/드라마 참고해서 어떻게 숨기고 오래 갈까 등등을 궁리합니다. 근데 다들 아시겠지만 사내연애는 복사기도 알고 있습니다. ㅎㅎ
예전에 코로나로 재택 근무가 빈번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팀내 감염자가 나와서 전체 재택을 하게 되었는데 개발 인프라의 원격 접속이 필요해서 개발자들에게 개별로 댁내 IP등록을 인프라팀에 요청하라고 지시 했었습니다. 제가 안볼꺼라고 생각했었는지 둘이 똑같은 아이피를 신청했더군요. 나중에 관리점검차 방화벽 오픈 내역을 열어보고 오호~ 한건 찾았어! 라고 외쳤습니다. 방화벽도 아는 사내연애. 그 커플들은 몇주뒤에 회사 근처가 아닌 약간 떨어진 지하철역에서 현행범으로 잡혔습니다.
왜 공개를 안할까?
그러다가 어느날 든 생각이 왜 사내연애는 공개를 안할까? 였습니다. 드라마가 시켜서? 유행이라? 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들키면 공개처형
들키면 공개적으로 놀림감이 됩니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저기 니 남(여)친 지난간다! 이게 농담이 아닌 실제가 되어 버립니다. 처음 한두번이야 장난 삼아 그런다 지만 계속 그러면 둘다 피곤해 지지요. 일이랑 농담의 경계도 섞이게 되고 그런게 싫어서 아예 안밝히는것 같더군요.
헤어지면 민망해서?
대부분의 원인은 이거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귈때야 즐겁지만 헤어지면 주변의 눈치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겠지요. 관리자 입장에서도 헤어졌다는 얘길 듣고 나면 둘다 관심사병 대상으로 분류합니다. 서로 마주치기 싫어서 최소 한명이 퇴사할 경우가 많거든요. 남자 직원이면 술먹고 달래고 마음 추스리게라도 해보는데 여자 직원이면 뭐 방법이 없습니다. 잠잠해 지길 기다리면서 기도합니다. 면담하러 오지 않기를...
나같은 악덕 관리자 때문에?
제가 그런 경우가 생기면 쾌재를 부르고 사내연애는 모르는척, 여자 직원쪽에 일을 더 줘서 콩쥐모드로 바꿔버리고 퇴근해 버립니다.
언제까지해놔~
그래도 그 다음에 보면 일이 완료 되어 있습니다. 거봐 할수 있잖아~ 하면서 일을 몇번 더 줍니다. 그래도 왠만한 상황이면 일은 되어 있어요. 그리고 하루하루 피곤해서 수척해지는 남자 직원의 얼굴을 보면서 만족스러워 합니다. ㅎㅎㅎ
주변에서 악마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둘의 사이는 시련으로 인해 더 단단해지리라.. ㅎㅎㅎ.
진짜로 그런 의도로 하는겁니다. 믿어보세요.
실제로 제 주변에 고객사 md 요구사항을 본인 팀장이 자꾸 까는데 몰래 해주다가 사귀고 결혼한 사람이 있습니다. 갑을 관계가 결혼후까지 이어지는 종신계약이 됐습니다.
사내연애의 단점
위에 언급한 많은 장점을 상쇄할 정도로 단점은 갯수가 적어도 파급력이 큽니다.
헤어지면 회사랑도 헤어지더라
위에서 언급했지만 헤어지면 사내에서 마주보기 껄끄러워 집니다. 둘다 혹은 어느 한쪽은 돈벌어서 먹고 살기위해 회사를 다닌다는 중요 명제를 망각하고 사표를 냅니다. 퇴사하고 나서 원인이 사내연애였다라는 사실을 알게된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다들 일 잘하는 친구들이였는데...
회사가 망하면 쌍피
저는 집사람이랑 같은 회사는 아니였습니다만 이직들 하는 중간과정에서 상대편이 벌고 있으니 데이트할때 돈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내연애는 같은 회사의 운명 공동체다 보니 회사가 망하면 둘다 실직자, 구조조정이 발생하면 둘다 대상이 됩니다. 정리해고 과정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신경 쓰는것도 관리자 입장에서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둘중 한명을 정리해도 다른 한명도 마음이 떠나서 이직 준비를 하더군요. 하긴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그런 상황까지가면 목숨 연명모드가 되지 회생은 어려우니까요.
그러다 결혼하면 남자는... 흑흑흑
뭐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들도 더러 봤었습니다. 결혼식 직후까지는 행복해 보입니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그때부턴 경제공동체로 생존을 해야합니다. 가뜩이나 개발자 월급 유리지갑에 쥐꼬리 월급. 다 노출됩니다.
제가 본 최고의 충격적인건 신혼 여행 갔다와서 새댁께서 재무팀에 방문하여 이번달부터 남편 월급도 자기통장에 넣어달라였습니다. 서로 의논하고 합의했데요. 뒤에 새신랑도 서 있었는데 표정이 나라잃은 백성, 야구경기 10대0으로 지고 있는 9회말 선수 표정이였습니다. 대개 이렇게 결혼한 남자 직원들은 행동 패턴이 바뀝니다. 취미,술자리 참석이 확줄고 정말 가정적 노예 인 사람이 됩니다. 행동 패턴, 회사 휴일, 수당등이 다 노출되니 딴 주머니를 만들수 없는것도 취미 활동을 위축시킵니다. 다행이 배려심 좋은 새댁은 수당은 용인해 주기도 합니다만 아닌분들에게 걸리면... 흑흑흑.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커플은 결혼하면서 새신랑이 금연을 선언했었습니다. 용돈에서도 그 항목이 삭제되었었구요. 그 당시는 2000년대초라 화장실에서도 담배를 피울수 있었는데 이 양반은 화장실에 흡연자들이 들어가면 따라와서 측은하게 바라보길래 동료들이 한두까치 줬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남자화장실 열려 있는걸 모르고 피우다가 새댁이 지나가면서 봤습니다. 그때 눈이 마주쳤을때 새신랑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걸 본 표정이였습니다. 아... 얘는 귀신보면 이표정이겠구나. 그날 둘다 아무말안하고 일만하다가 정시되니 아무말 없이 새댁은 일어나서 퇴근하고 신랑은 조용히 끌려가더군요. 흑흑흑. 불쌍해.
마무리
사내연애야 개인의 자유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관리자 입장에서 시한폭탄같아 불안하긴 합니다. 공사를 구별해주거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을텐데...
그리고 그동안 봐온 결혼으로 골인한 선임들의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한참 즐거워하는 그 친구들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어쩌겄어요. 니가 좋으면 장땡이지. 근데 여자친구를 와이프로 업그레이드 하면 롤백은 안됩니다. 둘의 전투력 차이는... 저글링과 배틀크루저.
지금도 사내연애를 꿈꾸는, 사내연애에 막연한 환상을 가진 젊은 개발자분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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